바쁘게 지나치기만 했던 도시 익산의 유명 관광지 미륵사지, 왕궁리유적(백제 왕궁), 나바위 성당 을 다녀온 후기를 정리해둡니다.
미륵사지 석탑
▶위치 :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관람시간 전시관 10:00 ~ 18:00, 옥외공간 07:00 ~ 일몰 시까지,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과 명절 당일.

미륵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236호 미륵사지 경내에는 석탑의 남쪽에 동서로 약 90m의 간격을 두고 규모나 형태, 조성 수법이 매우 비슷한 당간지주 2기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장식이 적으며 단정한 형태를 보이는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간지주 :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구실을 하였기 때문에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 앞에 설치했던 건축물입니다. 현재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로 남아 있는 곳은 중초 사당간지주(보물 제4호), 금산사당간지주(보물 제28호), 숙수사당간지주(보물 제59호), 춘천근화동당간지주(보물 제76호), 보원사당간지주(보물 제103호), 부석사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등이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 국보 제11호 7세기에 미륵사가 처음 지어질 당시 세워진 세 기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입니다. 많은 석재들이 없어져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남아있던 석재를 참고해 9층으로 복원된 동쪽 석탑과 같은 규모라고 추정됩니다. 예전에 국사 교과서에서 많이 봤던 콘크리트로 탑의 일부를 지탱하던 것인데 2001년부터 2017년까지 해체와 조립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2009년 1월 가장 아래의 심주석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는데 백제왕후가 639년에 탑을 세우면서 사리를 모셨다는 기록이 확인되었습니다.

사리장엄 : 부처님을 상징하는 존귀한 성체로서 성스러운 사리를 엄격한 법식을 갖추어 꾸미는 총체적 행위를 말합니다. 미륵사지 서탑 사리 구멍에서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3중의 사리 그릇과 발원문, 사리를 위해 공양한 장신구. 유리구슬. 직물 등 다양한 공양품이 발견되었습니다.
서탑 : 서쪽에 있는 국보 제11호를 말함.


1974년 동원 탑지를 발굴하여 그 기단의 규모와 형태 및 출토 유물을 조사한 결과, 서탑(국보 11호)과 같은 백제시대의 석탑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동원 구층 석탑은 동원 탑지에서 출토된 기단석, 옥개석, 노반석 등의 탑 부재와 현재 남아 있는 서탑 등을 통해 고증되어서 1991년 복원을 시작하여 1992년에 완료함.


미륵사지 석탑의 네 귀퉁이에는 사람 또는 동물처럼 보이는 화강암제 석상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사람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귀의 위치와 형태, 목이 없고 웅크리고 있는 듯한 자세는 동물과 닮아 있어 사람과 동물 특징이 조합된 신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모두 고려 말기 ~ 조선 초기에 제작되어 석탑 모서리마다 놓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립 익산 박물관
미륵사지 입구에 2020년 증축 개관한 박물관은 1997년 5월 9일 전라북도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으로 처음 문을 열고, 2000년대 들어와서 미륵사지에서 금동항로와 사리장엄구 등 중요한 문화재가 발견되었습니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중요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하여 2015년 12월 30일 국립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으로 전환되었고, 2019년 2월 26일 국립 익산 박물관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020년 현 위치에 새롭게 개관하였고 미륵사지의 경관을 해치지 않고 최대한 낮추어 건축하였네요.
관람시간 : 화 – 일요일 (월요일은 휴관) 10시 ~ 오후 6시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백제 미륵사의 모형 미륵사는 탑과 금당이 각각의 회랑으로 둘러싸여 동원, 중원, 서원의 3원으로 구성된 3 탑 3 금당의 독특한 가람배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가람배치는 미륵불이 세 번의 설법으로 모든 사람을 불교적 이상 세계로 인도한다는 믿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보물 제1753호 금동 항로입니다. 화사 항로의 범주에 속하고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다족 항로입니다. 다족 항로의 기원은 한나라로 추정되며, 이 금동 항로는 당나라 때 유행했던 항로의 한 유형이라고 생각됩니다.

금동신발은 익산 입점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금동관과 금동신발이 출토됨.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왕궁리는 예로부터 왕궁평, 왕검이, 왕금성으로 불려 백제의 왕궁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고대 백제의 왕궁터에 사찰이 들어선 것으로 보이며 이곳에는 왕궁 유적과 가찰 유적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백제 무왕 (600~641) 때 천도하여 조성한 왕궁터 남북 492m, 동서 234m, 폭 3m 내외의 궁장을 두른 후 내부 경사면을 따라 4단의 석축을 쌓고 평탄 대지를 조성하여 정무 공간, 생활공간, 후원 공간을 배치한 구조입니다.

왕궁리 유적 : 사적 제408호
왕궁으로 역할이 끝나고 사찰이 들어서게 되며 5층 석탑을 중심으로 1 탑 금당식 사찰로 그 성격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65년 석탑의 해체 보수공사 과정에서 기단부와 1층 탑신부에서 사리병, 금제 금강경판, 사리함, 금동불상 등의 사리장엄이 발견되었습니다.

왕궁리 오층 석탑 국보 제289호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서 만든 백제계 석탑으로 높이가 9m인 이 석탑은 단층 기단에 얇고 넓은 옥개석, 3단 옥개 닫침 등이 특징적입니다. 1965년 ~ 1966년에 해체 복원 괴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에서는 금강경판 19장, 금동제 사리함, 사리병 같은 사리장엄구가 석탑 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탑이 조성된 정확한 시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왕궁리 오층 석탑에서 출토된 금동제 사리함 국보 제123호

도금은제 금강경판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출토 국보 제123호 : 각 장에는 17행 x 17자 형식에 맞춰서 모든 글자가 새김이 아닌 돋음 기법(양출기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익산 나바위 성당
▶위치 : 전북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 1길 146
사적 제318호로 지정된 나바위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로 신부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귀국하면서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당입니다. 나바위란 너른(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나바위 성당은 1906년 베르모렐 신부가 주도하여 이듬해 완공하였고, 성당 설계는 명동 성당을 설계한 프아넬신부가,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아서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옥성당으로 지었는데 1916년 목조 종탑을 헐고 성당 전면부에 벽돌도 종탑을 증축하였습니다.
이때 흙벽을 벽돌벽으로 개조하고, 회랑에 있던 툇마루도 제거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당의 북쪽 언덕에는 1915년에 베르모렐 신부가 휴식과 기도를 위해 세운 망금정입니다.

1955년 성 김대건 신부 나바위 상륙 110주년과 함께 사복 30주년, 성당 건축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탑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 8. 21 ~ 1864. 9. 16)

순교자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1845년 8월 17일 중국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고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아 한국인 첫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8월 31일 작은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중국 상해를 떠나 제주도를 거쳐 금강으로 들어와 10월 12일 밤 8시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상륙하였습니다. 1여 년의 사목활동 끝에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고 1984년 5월 6일 시성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