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은 성남시, 광주시, 하남시에 걸쳐 있으며 해발 480m가 넘는 산꼭대기에 험준한 지형을 따라 산성의 둘레 약 11km가 넘는 성벽을 설치하였고, 면적이 2.12㎢나 되는 큰 성이다.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남한산성은 2014년 6월 22일 우리나라에서 11번째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가 된 날이다.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처음 성을 쌓고 주장성이라 했으며, 백제 온조왕의 성이라고도 전하기도 한다. 

도한 남한산성은 한 시대에 쌓은 것이 아니라 신라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쌓은 것으로 시기별로 성을 구축하는 방법이 다른 기법으로 성이 쌓인 것이 특이한 점이다. 

남한산성의 행궁

행궁은 임금이 도성을 떠나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로 사용하는 것으로 남한산성은 다른 행궁과는 다르게 종묘사직이 같이 있다는 것이 차잇점이다. 남한산성은 전쟁이나 내란 등으로 위험할 때 임시로 피난하는 곳으로 하기 위해 인조 4년 1626년에 건립되었고, 그 후 인조 14년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할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갔다. 성이 워낙 견고하고 높은 ㅣ곳에 구축되어 있어 싸움에 능한 청나라 군사도 성을 함략시키지 못하고 산성을 포위하고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인조는 이곳에서 47일간을 버티며 싸웠으나 청나라를 이기지 못하고 항복을 한 곳이다.

남한산성에는 절이 많이 있는데 남한산성 축조 당시 전국에 있는 승군을 소집하여 성을 지키는 군사로 사용하였으며, 사찰에서 군기와 화약을 보관하고 훈련도 하였던 것이다.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령에 의해 대부분의 사찰이 파괴되고 지금은 망월사지와 개원사지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삼전도의 굴욕을 안겨준 남한산성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고 청나라 군사가 남한산성을 에워쌓고 나오지 못하게 하자 추위와 배고픔에 어쩔 수 없이 인조는 청나라에 항복하였다. 항복할 때 세자와 신하들을 이끌고 남한산성 문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의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무릎을 꿇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청나라의 황제는 인조의 항복을 받고 삼전도비를 세우게 하였으며 지금 삼전도비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옆에 세워져 있다.

삼전도비의 정식 명칭은 ‘대청 황제 공덕비’로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고 비석의 앞면에는 만 주문자와 몽골 문자로 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삼전도비는 온갖 수모와 경멸을 받아가며 지금까지 버티고 서있다. 조선 인조 때 세워진 삼전도비는 고종 때가 되어 청나라의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상황이 전개되자 눈에 가시였던 삼전도비를 귀부에서 뽑아 엎어버리면서 영은문까지 무너뜨렸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다시 세워졌고, 1955년 삼전도비를 다시 뽑아 땅 속에 묻어버렸지만, 홍수로 인해 다시 세상에 나타나고 1962년 12월 문화재의 이름도 ‘삼전도 청 태종 공덕비’로 복구하고 사적 101호로 분류하였다.

2010년 3월 19일에 송파구 잠실동 47번지 현재의 석촌호수 서호 언덕으로 이전되어 보관 중이다. 2011년 7월 28일에는 사적의 지정명칭에 대해 일관된 지침을 적용하면서 지역명칭이 붙은 ‘서울 삼전도비’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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